안녕하세요 오늘은 손님한테 선물 받은 씨 없는 수박에 대해 적어보려고 하는데요. 어제가 중복이라 항상 오시는 손님이 수박을 주셨어요. 수박은 여름철에 많이 찾는 과일인데요. 수박은 시원하면서도 수분 함유량으로 인해 건강에도 좋습니다.
여름에 수박으로 수분도 보충해 주면서 더위를 식히는데도 도움이 되죠. 하지만 수박은 결정적인 결함이 하나 있는데 수박의 과육에 촘촘히 박혀 있는 검고 윤기 나는 타원형의 씨가 그것인데, 어쩌다가 과육과 함께 오도독 씹히는 수박씨가 왜 그리도 미운지. 하지만 제가 선물 받은 수박은 씨 가 없는데요. 어릴 때, 교과서를 보면 이 '씨 없는 수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그러면서 우장춘 박사님이 씨 없는 수박을 세계 최초로 재배한 것처럼 나오는데, 유감스럽게도 이는 틀린 말입니다.

우장춘 박사가 고국에 건너와서'씨 없는 수박'을 재배한 년도는 1952년인데, 이미 1943년에 일본이 기하라 히또시가 '씨 없는 수박'재배에 성공했었죠. 우장춘 박사님이'씨 없는 수박'을 재배한 이유는 당시 농민들에게 육종에 대한 눈을 뜨게 하기 위한 것이었는데요. 즉, 유전자 조작을 통해 인위적으로'씨 없는 수박'을 만들 수 있는 근대적인 기술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죠. 우장춘 박사님은 1898년 망명 정객 우범선과 일본 여성 사카이 나카 사이에서 태어났는데요. 그런데 우범선이라는 인물의 이력이 자못 특이하며, 그로 인해 우장춘박사님은 어릴 때부터 극심한 가난과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친일파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로 인해 불어했던 어린 시절 이유로 어린 우장춘박사님은 친일 매국노의 자식이라는 손가락질과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습니다.
게다가 일본인에게는 조선인이라는 멸시까지 받으면서 성장해야 했었습니다. 한마디로 불우한 시절의 연속이었던 셈이죠. 그러나 우장춘 박사님은 이런 불우한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육종학에 대한 꿈을 일구어 갔습니다. 우장춘 박사님의 좌우명은'밟혀도 꽃이 피는 길가의 민들레처럼'이었다고 하는데,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학문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은 입지전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우장춘 박사님의 기념관에 있는 마당에는 자유천이라고 하는 작은 우물이 하나 있는데, 이 우물에는 우 박사님과 그의 어머니에 관계된 가슴 아픈 사연이 하나 전해져 옵니다. 우장춘 박사님은 일본인 어머니를 지극히 그리워하였는데, 우장춘 박사님이 국내에 있는 동안 그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장춘 박사님은 어머니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하였는데요. 우장춘 박사님이 일본으로 돌아가서 다시 국내로 오지 않을 것을 염려한 정부에서 여권을 발급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우 박사님은 어머니의 죽음조차 지키지 못한 불효를 저지르게 되었던 거이었죠. 당시 원예시험장 마당 한 구석에는 물을 공급하는 우물이 하나 있었다고 하는데, 우 박사님은 그 우물을 자유천(자애로운 어머니의 젖이 솟는 샘)으로 명명하면서 평소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달랬다고 하네요..